훌리오 프랑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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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훌리오 프랑코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야구 선수로, 메이저 리그와 일본 프로 야구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82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실버 슬러거상을 수상하고, 1991년에는 타율 1위를 기록했다. 1995년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활약하며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2000년에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으며, 이후 멕시칸 리그 등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40대 후반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며 최고령 기록을 여러 차례 갱신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여 코치와 감독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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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오 프랑코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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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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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훌리오 세사르 로블레스 프랑코 |
출생일 | 1958년 8월 23일 |
출생지 | 아토마요르델레이, 도미니카 공화국 |
사망일 | (생존) |
포지션 | 내야수 / 지명타자 |
타석 | 우타 |
송구 | 우투 |
선수 경력 | |
MLB 데뷔 | 1982년 4월 23일, 필라델피아 필리스 |
NPB 데뷔 | 1995년 4월 1일, 지바 롯데 마린스 |
MLB 최종 | 2007년 9월 17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NPB 최종 | 1998년 10월 11일, 지바 롯데 마린스 |
선수 | 필라델피아 필리스 (1982)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83–1988) 텍사스 레인저스 (1989–1993) 시카고 화이트 삭스 (1994) 지바 롯데 마린스 (1995)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96–1997) 밀워키 브루어스 (1997) 지바 롯데 마린스 (1998)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1999) 삼성 라이온즈 (2000)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1–2005) 뉴욕 메츠 (2006–2007)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7) 멕시코시티 타이거스 (1999, 2001, 2008) 킨타나로오 타이거스 (2008) 포트워스 캐츠 (2014)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 (2015) |
수상 내역 | |
올스타 선정 | 3회 (1989–1991) |
실버 슬러거상 | 5회 (1988–1991, 1994) |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 1회 (1991) |
기록 | |
MLB 타율 | 0.298 |
MLB 안타 | 2,586개 |
MLB 홈런 | 173개 |
MLB 타점 | 1,194점 |
NPB 타율 | 0.298 |
NPB 홈런 | 28개 |
NPB 타점 | 135점 |
KBO 타율 | 0.327 |
KBO 홈런 | 22개 |
KBO 타점 | 110점 |
감독 및 코치 경력 | |
감독 | GCL 메츠 (2009) 푸에블라 패로츠 (2012-2013)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 (2015) |
코치 | 포트워스 캐츠 플레잉 코치 (2014)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16, 2018-2019) 롯데 자이언츠 타격코치 (2016-2017) 롯데 자이언츠 3군 타격코치 (2017) 롯데 자이언츠 잔류군 타격코치 (2019) 롯데 자이언츠 잔류군 총괄코치 (2020) 몬클로바 스틸러스 타격코치 (2022-) |
2. 선수 시절
1982년에 메이저 데뷔하였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실버 슬러거상을 수상했다. 1991년에는 타율 .341로 수위 타자를 획득했다.[12]
1995년에는 MLB 역사상 가장 긴 파업의 영향과 텍사스 레인저스 재직 당시 감독으로 그 해부터 지바 롯데 마린스의 감독으로 취임한 바비 발렌타인의 권유를 받아 롯데에 입단[37]했다. 당시에는 프랑코와 같은 MLB의 현역 거물 선수가 일본 구단으로 이적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일상생활이나 연습 태도까지 야구에 진지하게 임하는 자세에 고미야마 사토루나 호리 코이치를 비롯한 많은 마린스 선수들이 감명을 받았다.[37][38] 시즌 도중부터 부동의 4번 타자를 맡아, 리그 3위의 타율 .306, 10홈런, 58타점의 안정된 성적을 거두어,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10년 만의 A클래스인 2위로 도약하는 원동력이 되었다.[39] 그러나, 발렌타인 감독이 히로오카 타츠로GM와의 갈등으로 해임되자,[37] "110경기 이상 출전했을 경우 잔류 여부의 선택권이 있다"는 계약 조항을 내세워 자신의 의사로 퇴단[38]했다. "언젠가 반드시 롯데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MLB로 복귀했다.[37]
그 후, 1998년에 선수회의 강한 요구로 롯데에 복귀[40]했다. 복귀 당시에는 이미 40세였지만, 곤도 아키히토 감독으로부터 주장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37] 타율 .290, 18홈런, 77타점의 성적을 거두며 베스트 나인에도 선정되었지만, 팀은 프로 야구 기록인 18연패를 기록하는 등 최하위가 되면서 "기여도가 낮다"는 평가를 받아, 두 번째 일본 방문도 1년 만에 퇴단했다.[37]
1990년과 1996년에는 미일 야구의 메이저 리그 선발로도 방일했다.
현역 생활은 40대 후반까지 이어졌고, 2005년 6월 27일에는 메이저 리그 사상 최고령(46세 308일)으로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그 외에도 사상 최고령으로 대타홈런이나 사상 최고령으로 1경기 2도루 등 "사상 최고령"이라는 기록을 많이 갈아치웠다.[41] 식사를 지방으로 바꾸지 않고, 에너지를 결핍시키지 않기 위해 하루에 5~6끼의 소량 식사를 하는 보디빌딩식의 조정법 등으로,[42] 45세 때 팀 동료들로 하여금 "프랑코만큼 컨디션이 좋은 선수는 없다"라고 말하게 할 정도였다.
2006년 4월 20일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의 경기에서 대타 홈런을 쳐서, 1930년에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의 잭 퀸이 46세 357일 만에 기록한 메이저 최고령 홈런 기록을 갱신했다. 2007년 5월 4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 랜디 존슨을 상대로 2점 홈런을 쳐서, 자신이 가진 최고령 기록을 48세 254일까지 늘렸다.[39][43]
그러나, 출생 연도에는 다양한 설이 있어서, 롯데 시대에는 1961년 출생으로 알려졌지만, 후에 메이저 리그 기구의 발표로 '''1958년'''으로 정정되었다. 유력한 것은 커리어 초기에 공개된 1954년 출생설이다.[39] 1954년 출생이라고 한다면, 최고령 홈런 기록은 50세를 넘었을 것이다.
2008년에는 리가 메히카나 데 베이스볼의 킨타나로 타이거스에서 뛰었지만, 5월 3일에 그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밝혔다.[44]
2014년 5월, 미국 독립 리그인 유나이티드 리그 베이스볼의 포트워스 캐츠가 코치 겸임 계약을 했다고 발표[45]했다. 55세로 6년 만에 현역 복귀하여,[46][47] 주로 "4번・지명 타자"로 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22 (27타수 6안타)를 기록했다.[48]
2015년, BC 리그의 이시카와 미리오스타즈에 선수 겸임 감독으로 입단했다.[49] 선수로서 타율 .312 (77타수 24안타)를 기록했고,[50] 감독으로서 31승 38패 3무를 기록했다. 팀은 리그 최다 실책을 기록하는 등 부진했고, 이시카와는 2시즌제 도입 이후 이어지던 지구 챔피언십 진출이 멈췄다.[51]
(2002년 8월 21일)
2. 1. 초기 생애 및 마이너 리그 시절
훌리오 프랑코는 도미니카 공화국 아토마요르에서 태어났다.[3] 어렸을 때 그는 산페드로데마코리스에서 동쪽으로 50마일 떨어진 가난한 자치구인 콘수엘로에서 살았으며, 콘수엘로에 있는 디바인 프로비던스 학교에 다녔다.[3][4]1982년에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입단하였다. 1978년 4월 23일 아마추어 자유 계약 선수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한 프랑코는 루키 레벨의 뷰트 코퍼 킹스에 합류했다. 5번의 마이너 리그 시즌 동안 그는 모두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다. 프랑코는 필라델피아 마이너 리그 시스템을 통해 매년 승격되었고, 1982년에는 클래스 AAA의 오클라호마 시티 89ers에 도달하여 120경기에서 타율 3할, 21홈런을 기록했다.
2. 2. 미국 프로야구 시절
훌리오 프랑코는 1982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입단하여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였다.[6] 같은 해 12월 9일, 윈터 미팅에서 본 헤이즈를 상대로 매니 트리요등 4명의 선수들과 함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되었다.[6]1983년은 프랑코가 메이저 리그에서 풀 시즌을 소화한 첫 해였다. 그는 149경기에서 .273의 타율과 153개의 안타를 기록했으며,[7]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투표에서 론 키틀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8]
1986년 6월, 프랑코는 경기 시작 전 무단으로 야구장을 떠나 인디언스로부터 2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9] 1986년부터 1989년까지 매 시즌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으며, 1983년부터 1991년까지 매 시즌 2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했다. 1988년 유격수에서 2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4번 연속 실버 슬러거상을 수상했다. 프랑코는 무거운 배트를 사용했고, 그의 타격 스타일 때문에 아메리칸 리그에서 병살타를 가장 많이 기록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10]
1988년 12월, 윈터 미팅 기간 동안 프랑코는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레인저스는 라파엘 팔메이로를 영입한 상태였고, 프랑코는 5번 타자로 기용되어 그의 타점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11]
텍사스에서 프랑코는 1989년, 1990년, 1991년 세 번의 올스타에 선발되었고, 1990년 메이저 리그 올스타전에서 MVP를 수상했다. 1990년 올스타전에서 프랑코는 롭 디블을 상대로 2루타를 쳐내며 경기의 유일한 득점을 올렸다.
1991년 프랑코는 유일하게 200안타 시즌을 기록했고 아메리칸 리그 타율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의 .341 타율은 웨이드 보그스보다 높았다.[12] 1992년의 무릎 부상으로 그는 33경기 출전에 그쳤고,[13] 이후 2루수로서의 출전은 사실상 마감되었다.[13] 그는 이 부상이 자신의 신체 관리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14] 1993년을 지명 타자로 보낸 후 자유 계약 선수가 되어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계약했다.
2. 3. 일본 프로야구 시절
1995년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하였다. 1994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소속으로 20개의 홈런을 치고 100 타점을 기록할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1994-95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파업으로 시즌 잔여 경기가 취소되었다. 프랑코는 다섯 번째 실버 슬러거 상을 수상했고, 처음으로 지명 타자로 수상했다. 1994년 12월 28일, 퍼시픽 리그의 지바 롯데 마린스와 계약을 체결했다. 지바 롯데는 1995년에 구단 역사상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프랑코는 1루수로서 일본판 골드 글러브 상을 수상했다.1995년 일본 시즌을 마친 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계약했다. 1998년에는 다시 지바 롯데에서 뛰었다.
2. 4. 미국 프로야구 재복귀
1996년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복귀하였다.2001년 9월, 4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멕시칸 리그에서의 그의 성공을 보고 앙헬로폴리스(멕시코시티) 타이거스로부터 그의 계약을 구매했다. 프랑코는 1루수로서 수비와 타격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으며, 이후 3시즌 동안 브레이브스와 함께했다.[16]
2003년 8월, 프랑코는 웨이트룸에서 제이슨 마퀴스와 대화를 나누다 36kg 무게의 웨이트에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16] 2004년에는 MLB 역사상 가장 나이가 많은 정규 출전 포지션 선수로 캡 앤슨을 넘어섰다.[16]
2005년 12월, 47세의 프랑코는 뉴욕 메츠와 2년 계약을 체결했다.[16]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였으며,[16] 1950년대에 태어난 마지막 현역 선수였다. 2006년 4월 20일,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의 경기에서 역전 2점 홈런을 쳐내며 메이저 리그 역사상 홈런을 친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16] 이후에도 자신의 기록을 여러 차례 경신했다.[16]
프랑코는 만루 홈런, 대타 홈런, 한 경기에서 두 개의 홈런 및 도루를 기록한 최고령 선수이기도 하다.[16] 2006년에는 역대 최고령 대주자가 되었고,[17] 같은 해 9월에는 24년 만에 3루수로 선발 출전하기도 했다.[17]
2007년 메츠에서 타율 .200으로 부진한 후 지명 할당되었으나,[18]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재계약했다.[18] 그러나 마크 테셰이라의 영입으로 다시 지명 할당되었고,[18] 마이너 리그를 거쳐 9월에 다시 콜업되었다.[18]
2007년 10월 29일 자유 계약 선언 후,[18] 2008년에는 멕시칸 리그의 킨타나로오 티그레스 데 칸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19]
2. 5. 일본 프로야구 복귀
1998년에 지바 롯데 마린스에 복귀하였다.2. 6. 미국 프로야구 3차 복귀
1999년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에 입단하였다.[19] 2001년 9월, 43세의 나이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합류했는데, 이전 3시즌 동안 메이저 리그 타석은 단 한 번뿐이었다.[16] 멕시칸 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브레이브스에 합류한 프랑코는 1루수로서 좋은 수비와 좌완 투수 상대 강점을 보이며 이후 3시즌 동안 재계약했다.2003년 8월, 웨이트룸에서 제이슨 마퀴스와 대화 중 36kg 무게의 웨이트가 손가락 위로 굴러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16] 2004년에는 캡 앤슨을 넘어 MLB 역사상 최고령 정규 출전 포지션 선수가 되었다.[16]
2005년 12월, 47세의 프랑코는 뉴욕 메츠와 2년 계약을 체결했다.[17]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이자 1950년대생 마지막 현역 선수였다.[17] 2006년 4월 20일,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전에서 역전 2점 홈런을 쳐 메이저 리그 최고령 홈런 기록을 세웠고, 이후에도 자신의 기록을 여러 차례 경신했다.[17] 만루 홈런, 대타 홈런, 한 경기 2홈런 및 2도루를 기록한 최고령 선수이기도 하다.[17] 2006년 9월 19일, 메츠의 지구 우승 확정 다음 날에는 24년 만에 3루수로 선발 출전하기도 했다.[17]
2007년 메츠에서 .200의 타율로 부진하며 출전 시간 불만을 겪다 7월 12일 지명 할당되었고,[18] 7월 18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재계약했다.[19] 복귀 경기에서 3타수 1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활약했으나, 마크 테셰이라 영입으로 8월 1일 다시 지명 할당되었다.[19] 마이너 리그 지명을 수락한 후 9월 1일 콜업되었다.[19] 2007년 10월 29일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고, 2008년에는 멕시칸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19]
2. 7. 한국 프로야구 시절
2000년에 프랑코는 대한민국의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다.[15] 그는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으나 수준 미달의 주루 플레이와 형편없는 수비 탓에 1년 만에 한국을 떠나야 했다.[60]2. 7. 1.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00년에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으나 수준 미달의 주루 플레이와 형편없는 수비 탓인지[60] 1년 만에 한국을 떠나야 했다.2. 8. 멕시코 프로야구 시절
2001년 티그레스 데 킨타나로오에 입단하였다.[20] 2008년에 다시 티그레스 데 킨타나로오에 복귀하였으며, 그 해 5월 2일 은퇴를 발표했다. 다음 날 공식 발표가 있었는데, 프랑코는 은퇴가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말하며, 선수로서 자신의 생산성이 감소하고 있어 은퇴할 때라고 느꼈다고 밝혔다.[20] 1999년에는 멕시칸 리그 93경기에서 .423의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2. 9. 미국 프로야구 4차 복귀
2001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입단한 훌리오 프랑코는 2004년에 MLB 역사상 가장 나이 많은 정규 출전 포지션 선수로 캡 앤슨을 넘어섰다.[16] 2005년 12월 8일, 47세의 프랑코는 메츠와 2년 계약을 체결했다.[16]프랑코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였으며, 1950년대에 태어난 마지막 현역 선수였다.[16] 2006년 4월 20일,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의 경기에서 8회 대타로 출전해 역전 2점 홈런을 쳐내며, 메이저 리그 역사상 홈런을 친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16] 2007년 5월 4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좌완 랜디 존슨을 상대로 체이스 필드의 수영장으로 홈런을 날려 또 한 번 자신의 기록을 경신했다.[16] 그는 또한 만루 홈런, 대타 홈런, 한 경기에서 두 개의 홈런, 한 경기에서 두 개의 도루를 기록한 최고령 선수이기도 하다.
2006년 4월 26일, 프랑코는 1909년 뉴욕 자이언츠에서 49세의 나이로 도루를 기록한 알리 라섬에 이어 MLB 역사상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도루 선수가 되었다.[16] 2006년 7월 29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 프랑코는 카를로스 델가도가 몸에 맞는 볼 이후 대주자로 출전하며, 역대 최고령 대주자가 되었다.[16]
2007년 프랑코는 메츠에서 .200의 타율을 기록하며 고전했고, 7월 12일 지명 할당되었다.[18] 그는 7월 18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재계약했지만, 8월 1일 마크 테셰이라가 영입되면서 다시 지명 할당되었다.[19]
프랑코는 2008년 시즌을 멕시칸 리그의 킨타나로오 티그레스 데 칸쿤의 1루수로 뛰었다.[19]
2. 10. 미국 독립야구 시절
2014년에 포트워스 캐츠에 입단하였다. 2014년 5월 16일, 유나이티드 리그 베이스볼의 포트워스 캐츠는 훌리오 프랑코가 2014 시즌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26] 그는 7경기에서 27타수 6안타를 기록했다.[27]2015년 2월 8일, 일본 프로 독립 야구 리그인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의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는 프랑코가 선수 겸 감독으로 계약했다고 발표했다.[27][28] 프랑코는 선수로 자주 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시즌 14경기 만에 주전 선수의 부상으로 인해 10경기에 출전했다.[29]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에서 25경기에 출전하여 77타수 24안타, 타율 .312, 출루율 .432, 장타율 .416, OPS .847을 기록했다.[29]
2. 11. 일본 독립야구 시절
2015년 2월 8일, 일본 프로 독립 야구 리그인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의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는 훌리오 프랑코가 2015 시즌 선수 겸 감독으로 계약했다고 발표했다.[27][28] 프랑코는 선수로 자주 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시즌 14경기 만에 주전 선수의 부상으로 인해 10경기에 출전했다.[29]연도 | 구단 | 경기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삼진 | 볼넷 | 사구 | 희생타 | 희생 플라이 | 도루 | 실책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2015 | 이시카와 | 25 | 77 | 9 | 24 | 4 | 0 | 0 | 16 | 16 | 14 | 3 | 1 | 1 | 0 | 1 | 2 | .312 | .432 | .416 | .847 |
통산: 1년 | 25 | 77 | 9 | 24 | 4 | 0 | 0 | 16 | 16 | 14 | 3 | 1 | 1 | 0 | 1 | 2 | .312 | .432 | .416 | .847 |
2009년부터 감독으로 활동했고, 2014년부터 코치로 활동했다.
3. 야구선수 은퇴 후
2008년 5월 2일, 프랑코는 멕시칸 리그 팀인 킨타나로오 타이거스에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다음 날 공식 발표가 나왔다. 프랑코는 은퇴가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말하면서, 선수로서 자신의 생산성이 감소하고 있으며 은퇴할 때라고 느꼈다고 말했다.[20]
2009년 3월, 루키 레벨의 걸프 코스트 리그 메츠의 감독으로 고용되었다.[21] 프랑코가 팀을 맡은 유일한 시즌에서 팀은 22승 34패의 기록을 세웠다.[5] 2010년~2011년, 프랑코는 베네수엘라 프로 야구 리그에서 카리베스 데 안소아테기라는 윈터 리그 팀을 감독했다. 그는 20년 만에 팀을 리그 챔피언십으로 이끌었다. 그는 다음 시즌에도 팀으로 돌아왔지만, 팀이 28승 28패의 승패 기록으로 시작한 후 해고되었다.[22] 그 직후 프랑코는 2012년 멕시칸 리그 시즌을 위해 페리코스 데 푸에블라의 감독으로 고용되었다.[23] 푸에블라에서 두 시즌 동안 그는 팀을 110승 104패로 이끌었다.[5]
2013년 야구 명예의 전당 투표에 이름을 올렸다. USA 투데이의 폴 화이트는 프랑코가 오랜 경력 동안 꾸준한 선수였지만, 압도적인 경우는 드물었다고 썼다. 화이트는 프랑코의 통계는 다른 야구 명예의 전당 2루수들보다 열등하다고 썼다.[24] 프랑코는 6표(총 투표의 1.1%)를 받았는데, 이는 다음 해 투표에 이름을 올리기에는 부족한 수치였다.[25]
2016년부터 2020년까지 KBO 리그의 롯데 자이언츠 코칭 스태프의 일원이었다.[30]
2022년 2월 5일, 프랑코는 멕시칸 리그로 복귀하여 아세레로스 데 몬클로바의 타격 코치로 임명되었다.[31]
4. 상세 정보
4. 1. 타격 스타일
배트 그립을 높게 들고 배트 끝을 투수에게 향하는 독특한 폼은 "스콜피온 타법"이라고 불렸다.[43] 이 타격 폼은 어릴 적부터 그립 위치를 조금씩 올려서 딱 좋은 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43] 메이저 리그 최고의 교타자이며,[54] 1991년에는 수위 타자를 획득했다. MLB 통산 타율도 .298로 높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MLB 통산 2586안타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선수 중 애드리안 벨트레, 블라디미르 게레로에 이은 역대 3위이다. 또한, 일본 프로 야구에서 286안타, 한국 프로 야구에서 156안타, 리가 메히카나 데 베이스볼에서 316안타, 도미니카 윈터 리그에서 267안타, MLB 산하 마이너 리그에서 618안타[41][55], 미국 독립 리그(유나이티드 리그 베이스볼)에서 6안타[48], 일본 독립 리그(BC 리그)에서 24안타[56]를 기록하며, 프로 통산 4259안타를 기록하고 있다.
발도 빨라서 한때 30도루 이상을 여러 번 기록했지만, 1992년에 무릎 부상을 당한 이후로는 거의 도루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40대 후반에도 적지만 매 시즌 도루를 기록했다.
데뷔 초에는 유격수였지만, 너무 많은 에러로 인해 2루수로 전향했다. 2루수에 대해서도 발에 비해 수비 범위가 좁다는 등의 이유로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무릎 부상 이후에는 1루수, 지명 타자에 전념했다. NPB에서는 1995년에 1루수로서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롯데 시절에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 중에서 35세가 넘어서도 뛰는 사람이 적은 것은 술과 담배를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다"라며, 당시 시대 배경상 NPB에서 과도한 음주와 흡연을 하는 선수가 눈에 띄는 것에 대해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4. 2. 수비 및 주루
훌리오 프랑코는 주로 1루수와 2루수로 뛰었으며, 유격수와 3루수로도 출장한 경험이 있다. 메이저 리그 통산 1루수로 508경기, 2루수로 663경기, 유격수로 715경기에 출전했다. 1995년 롯데 자이언츠 시절에는 1루수로 골든 글러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연 도 | 구 단 | 1루 (1B) | 2루 (2B) | 3루 (3B) | 유격 (S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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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 자 살 | 보 살 | 실 책 | 병 살 | 수 비 율 | 경기 | 자 살 | 보 살 | 실 책 | 병 살 | 수 비 율 | 경기 | 자 살 | 보 살 | 실 책 | 병 살 | 수 비 율 | 경기 | 자 살 | 보 살 | 실 책 | 병 살 | 수 비 율 | ||
1982 | PHI | - | - | 2 | 0 | 2 | 0 | 0 | 1.000 | 11 | 8 | 23 | 0 | 2 | 1.000 | ||||||||||
1983 | CLE | - | - | - | 149 | 247 | 438 | 28 | 92 | .961 | |||||||||||||||
1984 | - | - | - | 159 | 280 | 481 | 36 | 116 | .955 | ||||||||||||||||
1985 | - | 8 | 14 | 18 | 1 | 4 | .970 | - | 151 | 238 | 419 | 35 | 95 | .949 | |||||||||||
1986 | - | 13 | 17 | 39 | 1 | 9 | .982 | - | 134 | 231 | 374 | 18 | 31 | .971 | |||||||||||
1987 | - | 9 | 18 | 28 | 1 | 3 | .979 | - | 111 | 157 | 285 | 17 | 53 | .963 | |||||||||||
1988 | - | 151 | 310 | 434 | 14 | 87 | .982 | - | - | ||||||||||||||||
1989 | TEX | - | 140 | 256 | 386 | 13 | 70 | .980 | - | - | |||||||||||||||
1990 | - | 152 | 310 | 444 | 19 | 101 | .975 | - | - | ||||||||||||||||
1991 | - | 146 | 294 | 372 | 14 | 80 | .979 | - | - | ||||||||||||||||
1992 | - | 9 | 12 | 17 | 3 | 2 | .906 | - | - | ||||||||||||||||
1994 | CWS | 14 | 88 | 7 | 3 | 9 | .969 | - | - | - | |||||||||||||||
1995 | 롯데 | 88 | 744 | 59 | 4 | 59 | .995 | - | - | - | |||||||||||||||
1996 | CLE | 97 | 852 | 77 | 9 | 89 | .990 | - | - | - | |||||||||||||||
1997 | 1 | 1 | 0 | 0 | 0 | 1.000 | 35 | 69 | 107 | 3 | 23 | .983 | - | - | |||||||||||
MIL | 13 | 108 | 11 | 1 | 20 | .992 | - | - | - | ||||||||||||||||
'97계 | 14 | 109 | 11 | 1 | 20 | .992 | 35 | 69 | 107 | 3 | 23 | .983 | - | - | |||||||||||
1998 | 롯데 | 1 | 4 | 0 | 0 | 0 | 1.000 | 60 | 153 | 161 | 9 | 53 | .972 | - | - | ||||||||||
1999 | TB | 1 | 2 | 0 | 0 | 0 | 1.000 | - | - | - | |||||||||||||||
2001 | ATL | 23 | 181 | 16 | 1 | 20 | .995 | - | - | - | |||||||||||||||
2002 | 95 | 717 | 59 | 8 | 79 | .990 | - | - | - | ||||||||||||||||
2003 | 75 | 432 | 32 | 1 | 47 | .998 | - | - | - | ||||||||||||||||
2004 | 84 | 627 | 48 | 2 | 68 | .997 | - | - | - | ||||||||||||||||
2005 | 62 | 450 | 37 | 5 | 47 | .990 | - | - | - | ||||||||||||||||
2006 | NYM | 27 | 197 | 5 | 1 | 22 | .995 | - | 3 | 0 | 6 | 0 | 0 | 1.000 | - | ||||||||||
2007 | 6 | 22 | 3 | 0 | 3 | 1.000 | - | 2 | 1 | 4 | 0 | 0 | 1.000 | - | |||||||||||
ATL | 10 | 101 | 10 | 0 | 11 | 1.000 | - | - | - | ||||||||||||||||
'07계 | 16 | 123 | 13 | 0 | 14 | 1.000 | - | 2 | 1 | 4 | 0 | 0 | 1.000 | - | |||||||||||
MLB | 508 | 3778 | 305 | 31 | 415 | .992 | 663 | 1300 | 1845 | 69 | 379 | .979 | 7 | 1 | 12 | 0 | 0 | 1.000 | 715 | 1161 | 2020 | 134 | 439 | .960 | |
NPB | 89 | 748 | 59 | 4 | 59 | .995 | 60 | 153 | 161 | 9 | 53 | .972 | - | -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 NPB 시대의 '''굵은 글씨 연도'''는 골든 글러브상 수상
1980년대에는 유격수로 많은 경기에 출장했지만, 1990년대 이후로는 주로 1루수로 활약했다. 특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인 1984년에는 유격수로서 36개의 실책을 기록하며 리그 최다 실책을 기록하기도 했다. 1988년에는 2루수로서 .982의 높은 수비율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었다.
외야수로는 메이저 리그에서 단 5경기 출장에 그쳤다.
4. 3. 연도별 타격 성적
도
속
기
석
수
점
타
루
타
루
타
런
타
점
루
루
자
생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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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
넷
4
구
진
살
타
율
루
율
타
율
P
S